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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썅 다반사

군대, 그 짧은 26개월의 더 짧은 리뷰 - 3


혹한기 훈련 - 전입 후 신병대기를 하는 중이었다. 때는 바햐흐로 2월, 혹한기 시즌이다. 대충 서울만 가도 일단 1월보단 덜 추운게 바깥 세상의 이치인데 이놈의 강원도는 그런거 없다. 3월말, 4월초까진 겨울인 것이다. 아무튼
아무것도 준비된 것 없이 군장 덜렁 매고 혹한기에 딸려 나갔다. 원래 수색대 신병교육 이전의 신병에게는 훈련을 참가시키지 않았다는데 중대장님께서 친절히도 데리고 나가신단다. . 대대 전체가 움직이는 대대 단위 혹한기 훈련에 전입 후 첫 행군, 군장은 고참들의 배려로 가볍게 쌌지만 걷는건 그렇지 못했다. 이야, 단독군장으로 하는 사단 신병교육대의 행군은 애들 장난. 어깨를 짓누르는 C급 군장과 탄띠 뒤에 대롱대며 엉덩이를 괴롭히는 수통, 배를 압박하는 탄입대, 아직은 어색하기 이를데 없는 K-2 자동소총 - 원래는 K-3 기관총인데 신병이라고 기간병과 바꿨음 - 이 모든 것들이 행군의 적이되어 날 괴롭혔다. 15사단 근처의 숙영지로 걷는데 첫번째 난관이 다가왔다. 배고개 였던가? 아스팔트도 얼고 전투화도 얼어서 걷는게 꽤나 까다로웠는데 제법 각이 있는 고갯길을 머리 푹 숙이고 걸어 올라가니 곧 죽을 것 같았다. 바로 뒤의 일병급 고참이 등을 민다.

신병, 앞이랑 떨어지지마!
누군들 떨어지고 싶을까? 완전군장 행군은 처음이란 말이다. 게다가 여전히 과체중 - 97kg 상당의 - 이여서 몸을 싣고 걷는 것도 벅차던 상황. 결국 상병 두셋이 나서서 군장의 반합, 세면백 - 군장에서 빼기 쉬운 물품들 - 등을 빼어 자기들이 들고 간다. 그들의 눈빛은 단 하나.

낙오하면 죽는다.
크악, 아둥바둥 거리면서 결국 '10분간 휴식'을 무사히 할 수 있었다. 첫훈련 낙오는 그 이후의 모든 군생활 내내 쫓아다니면서 나를 갈굴 꺼리였을텐데 다행히도 낙오하지 않았다. 들리는 말로는 몇몇 낙오한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복귀하고 죽거나 아니면 훈련하는 내내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했으리라. 난코스 하나를 끝내고 걷고 걸어 숙영지에 도착했다. 발바닥이야 당연히도 완전 아작이 나 있었고 중대장은 이후 훈련에서 신병들을 열외 시켰다. 그런 연유로 웃기게도 이 혹한기 훈련에서 무슨 훈련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일주일 훈련 중 하루는 토끼 몰이를 했으며 토끼는 구경조차 못했다는 정도?

수색대대 신병교육 - 6주간의 신병교육대 훈련은 일반 보병들을 위한 기본 훈련이라며, 수색대대 인이 되려면 꼭 받아야 한다는 그 교육, 수색대대에서는 또 2주간의 신병교육을 따로 한다. 이 훈련을 받기 전까지 기간병 대우를 해 주지 않는다. 말 그대로 신병, 불침번이나 외곽근무조차 열외이며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곤 먹고, 싸고, 자고 뿐이다. 이미 혹한기 훈련으로 꼬인 군번임을 확실히 알게 된 나와 동기들은 신병 교육 따윈 무덤덤해 져 있었다. 이 훈련에는 우리 대대 뿐 아니라 각 연대의 수색중대 애들도 와서 함께 받는다. 퇴소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또 동기들을 보게 된 것이다. 우리 기수와 바로 밑의 3주 후임들까지 자대로 온 후 수색대 신병 교육이 시작되었다. 인원은 대략 40여명 정도로 기억한다. - 오래되서 제대로 기억이 잘... - 그 중에 사단 신병교육대에서 키 얼마이상 나오랬을 때 나왔다가 슬며시 빠졌던 동기가 연대 수색중대로 뽑혀 왔다. 차라리 그냥 수색대대 올걸 잘못했다는 진한 후회를 했다. 쌤통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이 신병교육의 대장이 우리 부소대장 이라는 정도? 신병교육 입소를 명 받고 난 K-3 기관총을 들고 신병교육대 막사로 향했다. 고참들은 신병때 K-3 기관총을 받은 건 니가 처음이라며, 축하 한다며, 가서 뺑이치라며 열열히 눈빛으로 환송해 주었다. 사실 별 신경을 안썼던 것 같다. 어차피 소대 본부는 소대장, 부소대장 딱가리 성격이 강한데다 분대장도 없어서 고참들이 별로 챙기지 않는다. 신병교육대 대장과의 첫 대면, - 나야 이미 사랑받는 몸이지만 - 나를 스윽 보더니 한마디 한다.

임조교, 넌 저거 들고 교육 받을 수 있겠냐? 가서 총 바꿔와! 이것들이 죽고 싶나...
 임조교는 1중대 조교이며 각 전투 중대마다 한 명의 조교가 있었다. 한시적으로 신병 교육기간에만 모이는 신병교육대이기 때문에 비교육 기간에는 함께 내무생활을 하는 중대 고참이다. 그래서 가져온 총이 K-2, 그나마 K-201 유탄 발사기가 달린 총을 가져 온것이 아니라 그나마 고마울 따름이다. 연대 수색중대에서는 K-1을 가져온 애들도 있더니만... 그렇게 수색대 신병교육이 시작되었다.

앞으로 '네'라는 대답은 없다. 모든 대답은 '악'이다. 악. 알겠나?
 첫날 아침을 먹기위해 식판 옆구리에 차고 대대 식당앞에서 각잡고 있는 우리들에게 조교는 그렇게 윽박 질
렀다. 유격 조교와는 다르게 빨간 모자가 아닌 까만 팔각모를 쓰고 땀복 비슷한 상의에 하의는 전투복을 입은 조교들의 모습은 상당히 위압적이었다. '악'. 뭐, 하라고 하니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거기다가 한 술 더 떠 소위 말하는 '직각 식사'도 덤으로 따라왔다. 시선은 전방, 숫가락 질은 수직으로 입앞까지 올려 입까지 또 직각으로 가져가는 식사법.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을리가 없다. 국물 따윈 애초에 떠 먹을 수 조차 없다. 아니 밥을 먹기 그 이전에 밥을 타고도 바로 먹지 못한다. 모든 신병교육대 동기들이 배식을 받고 착석 한 이후 살벌한 눈빛으로 이리저리 압박을 주다가 휙 던지는 한마디 '식사시작'이란 말에 '감사히 먹겠습니다.'라는 대꾸를 하고서야 비로소 첫술을 뜰 수 있는 것이다. 식사의 끝도 마찬가지. 다 먹고 났으면 - 물론 제대로 다 먹은 이는 하나도 없다. - 경직된 차렷 자세로 식탁에 앉아 대기해야 한다. 모두 먹기 전까지. 만약 꿈틀이라도 하면 바로 그 시간부로 '식사끝'을 외친다. 그럼 역시나 '감사히 먹었습니다.'라고 외친 후 후다다닥 짬통으로 뛰어가서 잔반을 처리한 후 식기를 세척하러 가야한다. '이동은 항상 집합하여 오와 열을 맞춘 후' 라는 전제를 충실히 따르지 않으면 남는 건 선착순이요 연병장 뺑뺑이.

오늘은 특공무술이다.
 말은 가볍다만 또 어떻게 우릴 갈굴 것인가에 촛점이 모아진 듯한 눈빛이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특무 1형. 내가 앞서 포스팅 한 수색대대 동영상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것이다. 시작은 특공무술의 '형'을 배우는 것이지만 사실은 우리들의 체력을 키우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딱히 잘못됐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체형상 선착순에는 도무지 이겨낼 도리가 없는 나의 경우에는 참 버겁기 그지없는 하루하루가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교육대장의 '따까리'인 내가 꾸준하게 선착순 뺑뺑이의 후순위를 독점하자 결국 임조교의 가차없는 일갈.

입에 흙 물어, 넌 선착순 끝날 때 까지 그렇게 뛴다.
 아, 별수 없다. 시키면 해야지. '악' 힘차게 대답하고 연병장의 흙을 손에 쥔다. 흙 물고 선착순 해 봤나? 안해봤으면 말을 말아야 한다. 이건 진짜 지옥이다. 숨이 차서 헐떡거리는 와중에 입엔 한웅큼의 흙이 들어있다고 생각해 보라. 숨이 막히는 정도가 아니라 숱제 구역질이 난다. 난이도 A급의 얼차려... 나 덕에 나와 비슷한 수준의 몇몇 동기들도 흙을 문다. 미안하다, 내가. 나만 아니었어도 이 정도 까지는 안가는 건데... 그렇게 특공무술, 태권도, 즉각 조치 사격, 침투 습격, 지상 헬기레펠 , 막타워 등의 모든 훈련을 마치고 나니 난 어느새 '샤프'한 느낌의 몸매로 변해 있었다. 보통 자대 전입 후 100일이 되면  휴가를 가게 되어 있지만 수색대대는 바로 이 수색대대 신병교육을 마쳐야만 100일 휴가를 보내주는데 퇴소 후 우리에게 쏟아지는 혜택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어느덧 사창리에서 공수해 놓은 대대마크, RCN마크, 공수윙, 사제 모자, 이름표... 퇴소식 당일, 수색대대장님께서 직접 '핀'으로 대대마크를 하사 하시고 달아 주시는데 이건 또 사단 신병교육대를 퇴소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사단 신교대는 군생활 끝이라는 해방감이 컸다면 수색대대 신병교육은 그야말로 구렁텅이로 빠져드는 기분이랄까? 무튼, 그런 저런 훈련을 모두 마치고 첫 휴가를 나갈 때의 나의 몸무게는 75kg. 돈 안들이고 한 다이어트라 내심 기뻤는데 나를 보는 어머님은 안쓰러워 어쩔줄 몰라 하셨던 기억이 난다.


육군 27사단 이기자 부대 커뮤니티 : http://igija.co.kr/

그림출처 : 구글 검색 - 행군 , K-3 , 식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