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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썅 다반사

군대, 그 짧은 26개월의 더 짧은 리뷰 - 2



훈련소 퇴소, 외박. - 군 생활은 이대로 끝인가? 6주 신병교육 후 퇴소하는 거개의 훈련병들은 보통 이때 말년 병장들보다 더 강한 해방감를 느낄 것이다. 난, 부모님이 26개월의 군생활 중 유일하게 면회를 오신 바로 그 때, 진짜 10년같이 느껴졌던 훈련소 생활에서 벗어난다는 그 하나만으로 세상을 다 가진 줄 알았다. 물론 1박 2일의 시한부 자유이긴 하지만 두어달 만에 뵙는 부모님 모습이 진짜 '짜안'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부모님과 방을 잡기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녔으나 이미 다른 가족들이 대다수의 여관을 선점한 후라 허름한 여인숙에 여장을 풀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곤 내가 보고 싶어 부산에서 그 먼 길을 오셨을 부모님을 그 여인숙 방에 방기한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함께 퇴소한 200명이 넘는 동기들이 사창리 - 이기자 부대의 외박지 - 에 쫙 퍼진 상태. 신병 교육을 마친 스무살의 청춘들이야 너무나도 당연하게 놀기 바쁜 것이 현실. 같은 내무실을 쓴 동기들만 100명이 넘고보니 수색대에 함께 갈 동기 15명과 몇몇 마음이 맞던 동기들까지 모여 당구를 치러갔다. 버스터미널 앞 당구장, 당시 신병교육대 조교로 뽑힌 한 동기 녀석이 교육 받는 내내 자기가 당구를 1000을 친다고 해서 확인할 겸 우루루 모여들었다. 게다가 그 점수가 쿠션 점수라니 다들 못미더워 했는데 실제로 당구장에서 모아치기를 선보이는데 한큐에 20~30개를 쳐대는게 아닌가? 그리고 하는 말이 더 가관이다.
나, 사구는 잘 못쳐, 한 500 되려나?
 이런 샹, 한 큐 잡으면 10분 이상씩 쳐대니 당구 칠 맛이 날리가 있나... 그렇게 두세 시간 당구를 치다가 날이 어둑어둑 해 질 무렵 술을 먹기로 한 동기들은 단란주점 하나를 습격한다. 가격을 합의하는 놈, 십시일반 돈을 걷고 있는 놈, 다들 '이미 끝난 군생활?'을 만끽하기 위해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스무명이 넘는 인원이었고 선금으로 100만원이 넘는 돈이 건네지고 나서 셔터는 내려졌다......

 새벽이 되서야 부모님이 기다리시는 여인숙으로 들어갔다. 군생활을 27년 하신 아버지와 그 아버지 덕에 군인가족 생활 20년차인 어머니는 다 이해하신다는 듯 뜬 눈으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아니, 설핏 기억나기로는 살짝 웃고 계셨던 것 같기도 했다.
이제 군생활 시작인데, 고생 좀 해봐라 이 놈아!
 다음 날, 쓰린 속을 부여잡고 일어나 부모님과 아침을 먹었다. 막상 또 헤어질 시간이 되니 왜이리 서글프냐, 냉정한 아버지, 별 말씀도 없이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끊으신다. '곧 100일 휴가때 뵙겠습니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집합장소인 '통신대대'로 어그적 거리며 걷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나와 비슷한 표정의 동기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초췌하고 뭔가 나사가 하나씩 빠진, 군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분위기가 '오와 열'을 맞춰 서기 시작하자 점점 사라진다. 곧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릿빠릿하고 늠늠(?)한 이등병들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자대 전입 - 아무리 자세를 잡으려 해도 각이 안나오는 이등병들이 가득한 통신대대 연병장으로 이들을 싣고갈 수송용 차량들이 한대, 두대 씩 들어온다. 수색대대로 함께 갈 열 다섯의 동기들, 서로의 불안한 눈빛을 보며 피식 거린다. 연대쪽은 승합차(?)도 오고 닷지(2 1/2톤)차도 오는데 수색대는 역시나 느낌 그대로 60트럭이 왔다. '수색대대 집합!', 육공에서 내린 키 190에 가까운 소위 한 명이 우리를 부른다. 헛, 얼굴도 영화배우 급이다. 우선 키에, 그리고 얼굴에 주눅이 든 동기 열 다섯 명은 빠릿하게 소대장의 앞으로 달려갔다.
가자. 탑승해.
 긴 말 필요 없다. 일단 태우고 출발한다. 생전 처음 타보는 육공트럭, 만감이 교차하는 듯 별 말 없이 주변을 두리번 거리는 동기들. 이윽고 수색대대를 올라가는 오르막 길에 접어들고서야 다들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차렷, 경롓, 이기자!

 위병소다. 살벌한 눈빛의 위병들이 선탑자에게 경례를 하고 손을 내리며 눈을 부라린다. '이 새끼들이, 놀러왔나? 눈 안깔아? 뭐가 이리 많어?' 등의 살벌한 말들이 우리들의 귓속을 파고 들었다. 입구부터 환영 거하게 해준다. 바로 김태우가 전역한 바로 그 부대다. 사진에서 김태우가 경례 하고 있는 바로 저 문을 통과해 들어 간 것이다.(덕분에 설명하긴 편하다.) 대대 연병장을 가로질러 사열대 앞에 도착한 육공트럭, 바짝 얼어서 기계적인 '군기'자세로 앉아 있으니 우리를 데리고 온 소대장이 씨익 웃으며 한마디 한다. '내려.' 화들짝, 번개같이 육공트럭에서 뛰어내린 우리들은 곧 간부식당으로 이동해야 했다. 그리고 이어진 대대 전입 신고 연습, 무려 중령이었던 대대장님을 상대해야 하는 초긴장의 사태, 열 다섯명이 모두 '차렷, 경례'를 목소리 높여 외친 후 그나마 목소리가 컷던  동기 한명이 - 세월이 너무 지나 누구였는지 기억이 잘... -  보고자로 당첨. 몇 번 연습을 한 후 전입 신고를 했다. 예상과는 다르게 별 무리없이 보고가 끝이나고 다시 돌아온 간부식당에서 여전히 바짝 얼어 있다보니 신교대에서 6주간 친해진 조교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어쩐지 그리워졌다.





중대 배치
- 곧 들이닥친 각 중대 인사계 - 이후 행정보급관으로 바뀜 - 들이 우리들을 보면서 근엄한 표정을 짓는다. 가장 먼저 물어 본 말은 아니나 다를까,
축구 잘하는 놈?
 비교적 젊은 2중대 인사계가 선수를 쳤다. 그 뒤로 이어진 호구 조사를 통해 우리들의 중대 배치가 결정 날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여지없이 신교대에서 날 찍었던 선임하사 - 부소대장 - 가 다가오더니 '왔냐? 내꺼.'... 난 이미 1중대 1소대 기관총 사수로 애저녁에 결정나 있었던 거다. 사회에서 요리하다 온 녀석은 간부 식당으로, 공 좀 차봤다는 녀석은 2중대로, 아무튼 이리저리 간 볼거 다 보고 각 중대 인사계들의 합의 하에 우리들은 뿔뿔히 헤어졌다. 수색대대에 열 다섯 명의 신병이 온 건 근래에 처음이라는 둥, 니들은 동기 많아서 좋겠다라는 둥의 소리를 들으며 배속받은 중대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에도 기간병 - 신병 빼고 모든 병 - 들의 눈빛은 우리를 주시했다. 눈빛 만으로도 사람의 살갖이 따끔 거릴 수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수색대대 1중대 3소대의 경우 사단 유격대의 임무를 수행하기 때문에 유격장에 파견 나가 있는 상황이었고 우리는 그 3소대의 내무실에서 앉아 대기하게 되었다. 침상에 몇개의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으며 선임하사는 우리에게 그 곳에 가까이 가지 말라는 주의를 주었다. 이유인즉, 당시 대대에 옴 환자가 발생하였는데 그들을 격리 수용해 놓은 곳이었던 것이다. 침상에 걸터 앉아 바짝 얼어 붙어 있는 중, 중대 간부들이 하나 둘 우리를 보기 위해 내무실로 들어섰다. 하나같이 '쌀벌한' 포스를 풍기며 칼날 같은 눈빛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물론 이등병의 신분인 나로서 그렇게 느낄 수 밖에 없었을 테지만 사실 그 눈빛들은 한없이 자애로운 자신의 부하를 바라보던 지휘자로서의 눈빛...... 이었을리가 없다. 오는 간부들 마다 한마디씩 하는데 모든 단어가 '갈굼'에 촛점이 맞춰져 있었던거다. 

 나야 이미 정해진대로 1소대, 나머지 동기들은 각각 2소대 한명, 포반 한명, 유격소대 두명 해서 소대까지 갈리고 나자 중대 보급병 각하께서 왕림 하셨다. 이어지는 보급품 확인, 탄탄한 몸매에 떡 벌어진 어깨, 살벌한 인생까지 여기가 정말 수색대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모습. '보수대 꺼내.' 순간 흠칫한다. 보수대가 뭐지? 주춤 주춤 하는 가운데 한 동기가 바늘과 실이 들어있는 쌈지를 꺼내든다. 아, 저게 보수대구나...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바늘 갯수까지 확인 한 후 다음 항목을 부른다. '전투복','전투화',...... 잘 이어지던 보급품 검사가 갑자기 멈춘다. '방상내피', 당황한다. 뭐지? 눈치빠른 동기 한녀석이 슬그머니 깔깔이를 내민다. 역시 군대는 눈치가 좀 있어야 한다. '방상외피'야 당연히 야상. 하지만 곧 우리는 '수건'에서 첫번째 난관에 봉착하고야 만다. 기본적으로 초기 보급품으로 수건은 2개가 지급되었다.
넌 왜 수건이 하나야?
 내가 딱 걸렸다. 신병교육대에서 침상용 걸레로 사용하기 위해 수건을 하나 희생했던 것이 이런 식으로 나를 압박할 줄이야. '침상에서 엉덩이 2cm 이격.' 곧바로 이어지는 나즈막한 목소리. 다섯명의 동기 모두가 낑낑대며 엉덩이를 약간 들고 바짝 얼어 붙었다.
이 자식들이, 보금품을 함부로 다뤄? 뭐? 걸레? 넌 니 보급품을 고작 걸레 따위로 만들었다는 말이 나와?
  이럴 줄 누가 알았나? 안그래도 바짝 든 군기, 마보 비슷한 자세지만 요점은 침상으로 부터 2cm라는 것. 1분도 지나지 않아 다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미안하다 동기들. 다시 이어진 보급품 검사. 이젠 없겠지 하는데 마지막 물건을 호명한다.
의류대 꺼내.
  뭐지? 의류대는 뭐야, 동기 한 녀석이 세면백을 슬그머니 꺼내든다. '그건 세면백이지 이 새끼, 빨리 의류대 안꺼내?' 분노가 어린 보급병의 목소리, 덜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다. '이것들이, 니네 의류대 안받아 왔어? 보급품을 안가져 오다니, 다들 영창 가고 싶어?' 윽박지르기 시작한다. 뭘까? 눈치빠른 동기 녀석조차 감을 잡지 못한다. 다시 한번 '침상에서 2cm 이격'. 다들 눈치조차 채지 못한다. 그 때 선임하사 - 1소대 부소대장 -가 들어온다. '야, 살살 해라. 왜 벌써부터 애들 잡고 그래?' 아군일까? 초조, 불안, 우리들의 눈은 선임하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이 놈들 의류대가 뭔지도 모르지 말입니다?' 보급병이 말을 하자 나를 쳐다보고 씨익 웃는 선임하사. 손으로 더블백을 툭툭 치더니 '이거면 거의 마지막이네?' 하더니 다시 내무실 밖으로 나간다. 그제서야 눈치챈 우리는 더블백을 들고 앞으로 내밀었다. 그제서야 살벌한 눈빛을 지우더니 실실 웃는다. 이렇게 웃으니 또,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가 따로 없는 푸근한 인상의 보급병.
아무튼, 보급품 함부로 다루면 나한테 죽는 줄 알아라. 명심해.
 '넵, 알겠습니다' 합창으로 대답을 하니 주섬주섬 들고 온 물건들을 챙겨 밖으로 나간다. 아... 이제 시작인데 어쩜 이러냐... 다섯 동기들은 눈빛으로 참 많은 대화를 나누고 또 나누었다.